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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살다보면 살아질 것이다

Power Reviewer 2022. 1. 31. 09:48

 

 

 

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_박수용 / 김영사

 

 

가끔 유튜브에서 사람과 (반려동물이 아닌)야생동물과의 교감이 이뤄지는 장면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 동물을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가, 위기상황에서 동물을 구해줬던가,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는 사연이 함께 소개된다. 서로 떨어짐의 기간 수년이 지나서도 교감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체취를 잊지 않고 바람같이 달려와서 안긴다. 성숙한 호랑이는 사람을 안는 것이 아니라 쓰러뜨리긴 하지만 그 순간에도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함께 느낀다.

이 책의 지은이 박수용 작가는 자연의 내면을 기록해 온 자연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문학가라고 소개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 한 후 EBS에 입사했다. ‘긴 시간과 광막한 미지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려 자연 다큐멘터리스트가 되었다. 생명 하나하나의 일상을 내밀하게 담아낸 수십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2011년에 국제 NGO인 ‘시베리아호랑이보호협회(STPS)’를 설립해서 시베리아호랑이 보호 및 연구 활동에 힘쓰고 있다. 저자의 전작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은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지만, 러시아 푸시킨 문학상 최종 후보 세 작품 안에 들어가기도 했다.

저자는 오랜 세월 연해주와 만주에서 야생의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해왔다. 땅속이나 나무 위에 잠복하고, 호랑이들이 다니는 길목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호랑이를 관찰하고 촬영했다. 호랑이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을 조사하고 그중 출몰이 잦은 곳에 잠복지를 만들어 호랑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저자의 이런 촬영방식은 그 후 루틴화되어 해외 다큐멘터리 제작진들도 이런 방식으로 호랑이를 촬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야생호랑이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애환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다큐멘터리 제작은 두 번째로 미루고, 첫 번째 일로 야생호랑이 보호를 위한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꼬리’를 만나면서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으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촬영을 위해 땅속의 작은 잠복지인 비트에서 살아있는 것들의 존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뭔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구렁이인가? 다시 자세히 보고 있자니 검은색과 누런색이 번갈아 띠를 이루고 있는 그 움직임은 호랑이 꼬리였다. 주위에 사냥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꼬리의 움직임만 보일 뿐 몸체는 그대로 있는 듯했다. 저자는 이 시베리아 호랑이에게 ‘꼬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연이라도 빨아들일 듯한 슬픔이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측은감으로 바뀌어갔다. 흐르는 시간과 광막한 공간 속에서 내가 꼬리의 손을 놓든 태양이 지구의 손을 놓든 소멸은 슬픔과 교접하고 슬픔은 사랑을 잉태한다. 어쩌면 죽음과 슬픔과 사랑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꽃이 피고 또 어딘가에서 꽃이 지고 있다.” 노쇠한 꼬리가 그 보다 젊은 호랑이에게 밀려 자신의 영역을 빼앗기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마을로 내려왔다가 건초창고에 갇혔다. 공교롭게 한 달 전 인근 마을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죽였는데 꼬리가 그 누명을 쓰게 된다. 인용한 이글은 마을사람들이 꼬리를 총살시켜야 한다고 아우성치던 그날 밤 창고 위 다락 위에서 꼬리를 내려다보고 느낀 마음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인근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의 현장조사를 통해 특유의 감각으로 꼬리가 아닌 다른 수호랑이라고 마을 사람들을 (돈으로)설득하고 꼬리를 구해낸다.

비록 저자와 꼬리는 유튜브에서처럼 서로 끌어안을 기회는 없었지만, 글의 이곳저곳에서 저자와 꼬리의 영혼적 교감이 이뤄지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다큐멘터리 작가의 흔한 기록을 예상했다가 뜻밖의 감성에 젖는다. 잔잔한 감동이 내 가슴에 내려앉는다. 이 책의 느낌을 간단히 표현해본다. “무릇 생명 있는 존재들은 살다보면 살아질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살다보면 사라질 것이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생을 미리 반추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의 말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 청장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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