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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

Power Reviewer 2016. 7. 6. 15:08

 

 

 

 

내 안에 개있다 】          신아연 / 책과나무

 

독서는커녕 제대로 된 글 한줄, 완성된 문장을 읽는 인내심마저 잃은 채, 멍하니 있으면 차라리 유익할 것을 전화기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시간을 죽이고 삶을 축내는 그 무서운 중독성에 진저리를 칠 때가 있습니다.” 지은이가 스마트폰과 현대인의 일상을 묘사한 대목이다. 물론 스마트폰을 통해 책을 읽기도 하고, 이런 저런 정보를 찾는 경우도 많기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지은이는 구식 전화기를 고수하다가 사진을 찍고 싶어서 폰을 바꿨다고 한다. “아름다운 호주의 자연을 사진에 담아 글로 묘사하고 싶어서입니다. ‘사진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 책의 지은이 신아연은 호주로 이민 가서 21년을 살다가 3년 전에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역이민인 셈이다. “이 책은 자유칼럼그룹과 호주 한국일보, 그리고 최근 1년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글 모음집입니다. 호주살이, 한국살이가 뒤섞이고, 가족과 함께 한 시간과 혼자의 시간이 혼재된 들쑥날쑥한 체험이지만 누구든, 어디든 결국은 모두가 사람살이라는 것에 공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감, 배려, 동행, 상생이라는 파트로 나누어진 글들은 지은이가 이야기한대로 사람살이이야기다. 사람내음이 물씬 배어있는 따뜻한 글들이다. 책 제목에 쓰인 내 안에 개있다의 내용이 궁금했다. ‘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반려동물로 개를 키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책 제목에서 개의 못된 성질을 연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일상은 힘이 센 법이지요. ‘이상일상을 이길 수 없고, ‘일상이 모여 일생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맞는 말이다. 나의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년이 되고 나의 평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 자리와 현재 나의 생각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뜬금없는 저것으로 인해 손에 잡히는 이것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매끈하게 정제된 저것이 소박하고 질박한 이것을 밀어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박제된 저것대신 생동으로 빛나는 이것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지은이는 내 안에 개있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개는 절대로 주인에 대한 충절을 버리거나 딴 마음을 품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저것이 아닌 이것을 섬긴다. “우리도 개처럼나의 근원이자 나의 지성 너머에 있으면서 매일 매일의 내 삶에 개입하는 절대적 존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저것이 아닌 이것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패러디한 죽은 한글의 사회라는 칼럼은 웃고 넘어가기엔 뒷 끝이 씁쓸하다. 한글날을 맞아 한 포털사이트가 대학생 617명을 대상으로 맞춤법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매우 충격적으로 나왔다. “감기 빨리 낳으세요. 어의가 없어요. 얼마 전에 들은 예기가 있는데요. 저한테 일해라절해라 하지 마세요. 이 정도면 문안하죠. 구지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설앞장이 안 열려요. 무리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지은이가 호주에서 21년 동안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 마음고생이 많았다.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적었다. 처음에는 좀 어리바리한 지은이를 향해 조선족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더니, 최근에는 외계인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는 것이다. 호주라는 이질 문화권에서 살다 온 사실에 대해 한 치의 배려도 없이 원체 이상하게 생겨 먹은 외계 생물 취급을 당하는 것이 지은이를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한다. “‘다르면서고분고분하지도 않으면, 그때부터는 틀린 것으로 찍히게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는 것이 고달파집니다. 제 한국 생활이 점점 고달파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아홉 살 꼬마는 아니지만(초등학교 2학년 때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겪었던 일을 회상) 우울한 일입니다.” 언제까지 나와 다소 다른 점을 틀렸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부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