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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어느 때 까지나이까?

Power Reviewer 2023. 3. 22. 14:10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_이윤하 / 허블

 

 

기엔 제비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려 애썼다. 안료를 섞어 만든 물감을, 손에든 붓으로 가볍게 찍었다.” 주인공 기엔 제비가 예술성의 널찍한 시험장에서 다른 화가들 틈에 끼어서 시험을 보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주요 주제를 묘사하는 능력을 확인해서 당락을 결정합니다. 오늘 이미 세 번의 시험을 치렀습니다. 대나무 그림부터 풍경, 인물화를 그렸는데 지금은 마지막이자 가장 어려운 시험인 꽃 그림입니다.

 

주인공 제비는 꽃 그림을 그리려 하면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꽃이 담은 의미에 따라 화가의 마음을 짐작하는 경우도 있지요. 특히 제비가 처한 지금의 상황에선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제비의 조국인 화국은 6년 전, 라잔 제국에 점령당해 ‘14행정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나라이름도 없어지고 라잔 제국의 여러 지배영역 속 한 곳에 불과하게 됩니다.

 

어쨌든 시험을 잘 치루긴 했으나, 문제가 있습니다. 제비는 지금 절박한 상황입니다. 뭣 때문에 빚을 졌는지 모르지만, 사채빚이 많아서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갑니다. 자칫하면 사채업자들에게 큰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비가 빨리 돈을 벌어야 할 이유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림을 다 그린 후, 서명란에 그의 화국이름인 제비대신에 라잔국 이름인 테레사오 트세난이라고 적습니다. 제비는 이 서명(개명) 때문에 유일한 피붙이이자 뼛속까지 독립군인 언니 봉숭아와 멀어지게 됩니다. 시험결과는? 안타깝게 불합격입니다.

 

차후에 이 소설을 읽을 독자를 위해 관독(觀讀)포인트를 알려드립니다. 위에 언급된 화국이란 나라는 조선입니다. 라잔국은 일본입니다. , 조선이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대략 1920년대 중반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작가는 조선을 화국으로, 일본을 라잔으로 이름만 바꿨습니다. 소설 속엔 궁궐, 서대문 등 낯익은 정경과 이름도 등장합니다.

 

그나저나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건가요?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그저 손만 잡고 가자는 건가요? 북리뷰에서 정치적 사안을 최대한 자제하는 편인데, 한일관계는 단순 정치적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한국 민족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부가 한일관계를 다룸에 느낀 개인적인 의문점은 두 가지입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고 전범기업이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을 시킨 것에 대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을 이번 정부가 없던 일로 돌리는 나쁜 결정을 한 것을 이해 못하겠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가해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안 보이는데, 터무니없는 관용을 베풀면서 우리 잘못도 있소라는 식으로 가는 건, 어느 나라 방식입니까? 개인적으로 그리하고 살아간다면 박수라도 쳐주고 싶지만(개인적으로 그리 배포가 크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습니다)국운이 걸린 문제를 나무 경솔하게 처리하는 듯합니다. 미안합니다. 잠시 흥분했습니다. 전혀 나의 개인적 소견입니다. 한일문제는 이 소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와 무관하지 않기에 언급했습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시험에 떨어진 제비는 우여곡절 끝에 라잔국에서 운영하는 방위성에 취직하게 됩니다. 제비는 그곳에서 아라지라는 이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용을 만납니다. 제비의 역할은 그 용 아라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용을 채색시키기 위해 이 소설 제목으로 쓰인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가 필요하고, 용을 입맛에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마법 문양(명령어로 이해해야 할 듯)을 위해 애씁니다. 제비는 그 용을 대하면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아라지를 라잔국이 마음대로 사용하게 할 경우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화란민족인데, 언제 어디까지 방위성에 협조를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소설의 후반부 흐름은 다소 빨라집니다. 제비가 그곳 방위성에서 만난 결투사 베이와의 애증, 언니 봉숭아와의 관계, 전투 등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소설은 서지 분류상 외국 과학소설, 미국문학으로 분류됩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의 작가 이윤하가 한국계 미국인 SF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 편인데 작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더군요. 작가가 쓴 소설 중 세계적 베스트셀러도 있구요. 원서는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한국에 소개되면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 나 나름대로 환상역사소설이라고 이름붙입니다. 참 그리고 이 소설엔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대세입니다.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나오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갈등을 그린 소설을 백합소설이라고 하던가요? 대충 그런 분위기입니다. 가독성이 좋은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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