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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음식들

Power Reviewer 2019. 9. 20. 23:19

 

 

【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       _황교익 / 지식너머

 

왜 이 책의 저자 황교익(맛 칼럼니스트)은 온 국민의 간식거리인 떡볶이와 치킨이 맛이 없다고 했을까? 개인적인 의구심이 생겼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저자가 그런 말을 한 것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 마치 신화처럼 자리 잡은 음식들을 흔들어보고, 뒤집어보면서 그 음식의 족보를 다시 쓰고 있다.

‘떡볶이는 떡볶이가 아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떡볶이는 떡을 볶지 않기에, 이름을 제대로 붙이자면 떡매운탕이나 떡고추장조림이라고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음식이름을 짓는 데에 대충의 논리는 존재한다.” 음식이름을 통해 재료와 조리법을 알 수 있게 한다든지 그 맛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논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대충’ 이름 붙이기 사례는 적지 않다. 닭의 갈비가 없음에도 닭갈비이고, 돼지 등뼈가 월등히 많고, 심지어 감자 한 알 구경하기도 힘든 감자탕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자본과 정치권력이 한국음식에 심어둔 판타지를 읽어내는 작업으로 얻은 결과물이다. 취재하여 얻은 사실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덧대었다. 그들의 판타지를 해체하면서 나의 판타지를 집어넣기도 하였다.”

정치권력 이야기가 나온 김에 떡볶이 이야기를 좀 더 옮겨본다. 이명박 정부가 벌였던 한식 세계화의 주요 아이템 중 하나가 떡볶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사실 그쪽 동네에서 벌리는 사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저자의 취재에 의하면 당시 이명박 정부는 떡볶이를 통해 얻어낼 것이 있었다. 첫째, 창고에서 썩어가는 쌀 처분하기. 둘째, 2008년 미국 발 세계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소규모 창업자를 지원한다는 정부의 액션. 셋째, 이명박 정부에 애국애족의 이미지를 붙이는 데에 떡볶이 활용. “이명박 정부가 국민이 모르게 숨긴 게 또 하나 있다. 떡볶이 쌀의 원산지이다. 음식점에서 파는 떡볶이의 경우, 그 쌀의 원산지를 표시할 의무가 없다. (....) 수입쌀로 만든 떡볶이를 숨기기 위한 술수였다. 쌀 떡볶이조차도 맛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저자는 직설적으로 ‘맛이 없다’고 표현했지만, 좀 완곡한 표현을 한다면 ‘제 맛이 안 난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별 생각 없이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다소 지나치게 앞서가는 면도 보이지만, 저자의 ‘쓴소리’는 대중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 먹는 음식의 질과 양을 결정하는 자본과 정치권력이 그 대상이라고 못을 박는다.

저자가 ‘쓴소리 리스트’에 올린 음식이 많기도 하다. 성체에 이르기 전에 잡아서 양념범벅으로 위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닭으로 튀겨지는 치킨, 푸드 포르노 비판, 유기농의 맹점, 음식은 약이 될 수 없다, 삼겹살과 쌈 이야기, 스스로 맥도날드화한 비빔밥, 평양냉면, 기생집 상차림의 전통인 한정식, 사찰음식, 조선 궁중음식의 원조, 그들만의 요리 ‘신선로’ 이야기 등등이다.

저자는 맛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30년 가까이 유지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 “나는 왜 이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라고 한다. 본능 너머에 존재하는 음식 기호에 대한 탐구였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에 불편해할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저자는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별로 없는 책이다. 괜히 읽었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하고 고민만 깊어졌을 수도 있다. 기존의 한국음식 담론과는 그 결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맞다. 그간 내가 먹고,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먼 나라 음식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화가 되어버린 음식들에 나 역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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