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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 말년의 시 모음집 [하디 시선] 본문

2015

하디 말년의 시 모음집 [하디 시선]

Power Reviewer 2015. 5. 18. 17:58

 

 

 

 

 

이야기 2015-102

 

하디 시선(詩選)토머스 하디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1. “...햇빛이 어찌나 화창하던지,/ 우리가 플린트쿰애시를 떠나/ 웃음 터져 나오는 목초지에서, 예순 마리의 젖소와 함께/ 그리고 양동이와 노래와 사랑 - 너무나 무모한 사랑과 함께다시 한 번 목장 일을 하고 있었을 때/ 햇빛이 어찌나 화창하던지!”    _‘우리는 밭일하는 여자들일부

 

눈이 부시게 푸르른 오월의 하늘 밑에서 이 시를 읽다보니 더 생동감이 있다.

 

2. 토머스 하디는 생전에 1,000편이 넘는 시를 썼지만 하디 생존 당시엔 시인으로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최근에 와서 시인으로서의 위상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하디의 시에도 그의 소설에서처럼 다분히 염세적이고 절망적, 비극적인 느낌이 잠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디의 시는 서정적인 향취가 느껴지는 시들도 제법 있다.

 

3. "겨울철이 다가오네/ 그러나 내 사별의 고통을/ 겨울이 다시 가져올 수는 없으리/ 어느 누구도 두 번 죽지는 않으니// 꽃잎이 날리네/ 그러나 그것은 한 번 겪은 일이기에/ 그 떨어지는 광경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는 없으리// 새들이 무서워 약해지네/ 컴컴할 정도의 외로운 서릿발 속에서/ 나는 늙은 힘을 잃지 않으리/ 힘은 떠난 지 오래 되었지만// 나뭇잎이 암갈색으로 얼어붙네/ 그러나 친구들은 차갑게 변할 수 없으리/ 이 계절에 그에게는/ 옛 시절의 친구들이 아무도 없으니// 폭풍은 해를 끼칠지 모르네/ 그러나 사랑은 상처를 줄 수 없으리/ 심장이 없는 그의 가슴이/ 올해 다시 상처를 입을 리 없으니// 밤이 검은 외투를 입고 있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의구심을 접고서/ 희망 없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겁줄 수 없으리."     _‘어둠 속에서전문.

 

하디보다 앞서간 첫 번째 부인 엠마(Emma)를 회상하며 쓴 시다. 삶과 죽음 사이에 창조 공간이 존재한다. 꽃잎이 날리고, 나뭇잎이 암갈색으로 얼어붙는다. 생전에는 별로 살갑지 않은 대상이었던 부인 엠마가 죽고 난 후 시 창작의 에너지가 솟구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녀에게 미처 담아주지 못한 사랑이 시로 바뀌었으리라. 하디는 그녀가 죽은 후 10년간에 걸쳐 가장 많은 시를 썼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의구심을 접고서/ 희망 없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겁줄 수 없으리하디에게 죽음은 불행한 삶에서 해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고통이 불가피한 세상에서 고통을 중단시키는 유일한 행복이다. 삶 속에서 죽음을 보고 죽음 속에서 삶을 보길 원한다. 그리고 그는 궁극적으로 이 땅의 호흡을 멈추고 그분 앞에 다다르길 소망한다. 시 제목 밑엔 구약 성서 시편 1024절 말씀이 적혀 있다.   저는 마른 풀잎처럼 생기를 잃고 제 가슴은 메말랐사옵니다.”

 

 

4.내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꽤 만족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았다/ 삶이, ‘이것을 받아하고 말하기에, 그것을 받았고/ 삶이 떠나하고 말하기에, 삶을 버렸다/ 만일 내가 아예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이렇게 말하고 말았을 텐데/ ‘그 사람이 삶을 거부했군, 삶을 적당히 썼을지도 모를 텐데’.” _’평온한 사람의 묘비명전문

 

스스로 꽤 만족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삶은 그런대로 괜찮다. 받으라고 하기에 받고, 떠나라고 하기에 떠나는 삶. 대안은 없다. 그러나 우린 받으면 영원히 갖고 싶고, 그 가짐의 행복이 클수록 떠나는 것은 참 싫다.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삶을 생각하는 것은 곧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이나 마찬가지다.

 

 

5. 하디는 처음엔 시()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만 써서는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 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가난과 절친인 이 땅의 시인들이여~) 누구나 겪는 과정이지만 처음엔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러나 몇 편의 소설이 잇따라 히트를 치면서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날린다. 돈도 제법 벌었다. 런던에 저택을 마련하고 시골에 별장도 짓고, 런던 사교계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배에 기름기가 많아져서 그런가? 전원생활로 모든 것을 옮긴 후 발표한 소설들이 세상 사람들의 신랄한 비평을 받자 그는 크게 낙담한다. 악평에 유난히 민감했던 하디는 비평가들이 자신의 문학작품을 보는 시야가 좁다고 반박도 해봤지만, 결국 그는 소설 쓰기를 접고 다시 시 쓰기로 돌아간다. 다행스러운 것은 처음 시를 쓸 때처럼 배가 고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