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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Power Reviewer 2019. 8. 27. 22:57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한창훈 / 문학동네

 

“섬은 연애하기가, 그래서 결혼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사내들은 충분한데 여자는 기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을 뽑는다면 첫째 조건으로 여자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일 것이다.” 섬에서 태어난 여인들은 어떻게든 뭍으로 나가게 되길 바란다고 들었다. 남자들 역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그 대신 뭍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 섬을 동경한다. 물론 잠시 머무르고 싶은 마음에서 그럴 것이다. 섬에 콕 박혀서 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 역시 뭍에서 나고 뭍에서 자란 사람인지라, 가끔 섬 생활을 꿈꿔보긴 한다. 섬에서 생활하다보면 막연하나마 그 동안 육지 생활에서 묻은 여러 쓸모없는 상념들을 섬의 바람과 바닷물에 날려 보내고 띄워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한창훈 작가는 섬사람이다. 섬 사나이다. 거문도에서 태어났다. 7살 때부터 바다낚시를 했다.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것과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끝없는 바다로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이라는 사주팔자 탓인지, 포장마차, 이런저런 배의 선원, 공사현장, 공장을 전전하며 젊은 시절을 흘려보냈다. 그 뒤로 전업 작가가 된 후, 한국작가회의 관련 일을 하고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하기도 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변방의 삶을 주로 써왔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바다를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바다를 좀 더 깊숙이 친해지게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산은 풀어진 것을 맺게 하지만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내게 한다는 표현에 주목한다.

 

책 제목에 쓰인 「자산어보(玆山魚譜)」는 1814년(순조14)에 손암 정약전이 저술한 어류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귀양을 가있던 흑산도 연해의 어류를 취급했다. 총 3권으로 구성된「자산어보(玆山魚譜)」는 인류(鱗類), 무인류(無鱗類)및 개류(介類), 잡류(雜類)로 구성되어있다. 저자는 매 편 도입부를 자산어보에서 인용하고 있다. 한창훈 작가에 의해 다시 쓰이고 덧붙여지는 현대판 자산어보인 셈이다.

 

30종의 해산물(한 종은 예외)낚시와 채취, 요리법,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람살이가 담겨있다. “섬사람 생활이 그렇듯이, 소박하면서 구체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각자 뚜렷한 것들입니다.” 예외로 분류된 한 종은 비밀병기다. 인어이야기다. 동서고금의 인어이야기를 들려준다.

 

“모양은 길 칼과 같고 큰 놈은 8~9자이다. 이빨은 단단하고 빽빽하다. 맛이 달고 물리면 독이 있다. 이른바 꽁치 종류이나 몸은 약간 납작하다.” 자산어보에 실린 ‘갈치’에 대한 언급이다. 저자가 쓴 글에 의해 갈치가 서서 헤엄을 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꼬리지느러미가 없는 탓에 등지느러미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섬에서는 늦가을 갈치를 쳐준다. 뭐든 살아있는 것은 월동 전에 살이 오르는 법 아닌가. 갈치는 간에 특효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이곳에 자주 오는 육지사람 중에 평생 간염으로 고생하다 오로지 갈치만으로 완쾌한 이도 있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비릿한 생선 내음과 함께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따뜻하고 훈훈한 삶의 온기와 향기를 함께 느끼게 된다. 작가의 바람대로 섬과 섬사람들과 바다를 더욱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글과 사진이 잘 어우러져서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글은 맛깔스러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해산물 공부 또한 잘 했다. 이 책은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문학동네, 2010)의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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