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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손등과 손바닥

Power Reviewer 2022. 8. 9. 12:25

 

 

 

눈물 한 방울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2019~2022

_이어령 / 김영사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깃털은 흔들린다.

날고 싶어서.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공깃돌은 흔들린다.

구르고 싶어서.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내 마음은 흔들린다.

살고 싶어서.

 

_(62) 2020.7.5. 전문

 

 

이어령 선생이 살아 계실 때, ‘판정을 받고 난 후 방사선 치료도, 항암치료도 받지 않으셨다고 한다. 3~6개월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했을 뿐이라고 알고 있다. 선생은 투병(鬪病)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친병(親病)이라고 불렀다. “의사가 당신 암이야이랬을 때 나는 받아들였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그래서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선생은 20191월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했다. 선생의 손바닥을 내밀면서,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보라. 손바닥과 손등, 둘을 어떻게 떼놓겠나. 뒤집으면 손바닥이고, 뒤집으면 손등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이 있겠나. ‘나는 살아있다는 생명의식은 나는 죽어있다는 죽음의식과 똑같다. 빛이 없다면 어둠이 있겠나. 죽음의 바탕이 있기에 생을 그릴 수가 있다. 의사의 통보는 오히려 내게 남은 시간이 한정돼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인용한 글에서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 내 마음은 흔들린다. / 살고 싶어서.”라는 부분에 가슴이 저려온다. 살고 싶다는 말,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

 

 

왜 눈물한방울인가? 이어령 선생은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선생이 영면에 들어가시기 전 3년여의 시간동안 손 글씨로 쓰신 것을 텍스트로 했다. 눈물방울의 흔적을 본다. 때로는 머리를, 때로는 가슴을 두드리는 내용들이다.

 

손으로 쓴 전화번호책

눈물 한 방울

어렴풋이 숫자 위에 떠오르는

아련한 얼굴

_(69) 2020. 8. 15. 전문

 

후반(영면에 들어가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으로 갈수록 육신의 고통으로 홀로 새벽에 깨어있으신 적이 많으셨다. 손 글씨를 보면 손의 힘도 많이 약해지신 듯하다.

 

내일 아침은 오지 않을 수도 있어

안녕” “잘 자혼자 인사말을 한다.

_(84) 2020. 11. 29. 일부

 

 

하나님 제가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까닭은,

저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옛날 읽은 책이라고 해도 꼭 한 번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체중이 줄고 기억력은 어제보다 가벼워지고 있어 내일이

가물거리는데도 신간 서적 서평이나 광고를 보며

책 주문을 합니다.

금서로 읽지 못한 자본론을 읽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오늘 띄엄띄엄 읽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인터넷 PDF

파일로 된 논문이거나 해설이거나 구텐베르크.org에 있는

전자책들입니다.

서재에 있는 책들은 힘이 없어 지하에 내려가기 어렵고, 손이

닿지 않은 높은 서가에 있어 그냥 훑어보는 것도 힘이 듭니다.

하나님, 내일 죽을 사람이 감춰둔 상자를 꺼내 금전 은전

동전을 세고 있는 추악한 모습이 떠오르지만 옛날처럼

경멸하거나 비웃음의 이야기로 삼지 않으렵니다.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게 하는 그런 소중한 것이 이

껍데기뿐인 인간의 삶에 있었다면 하나님 용서하소서. 조금

늦게 가도 용서하소서.

 

_(93) 2021. 3. 19. 전문

 

 

나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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