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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된 공산주의자 본문

2022

역사학자가 된 공산주의자

Power Reviewer 2022. 4. 10. 23:01

 

 

 

『 에릭 홉스봄 평전 』

_리처드 J. 에번스 지음 / 박원용,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984쪽 / 4만3000원

 

에릭 홉스봄(1917~2012)은 역사가이다. 그의 저서들은 5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수백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역사 속의 삶(a life in history)'이다. 에릭이 직업상 역사가였을 뿐 아니라 20세기의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 이를테면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베를린부터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 선거 이후 처음 열린 프랑스 혁명 기념식, 같은 해의 스페인 내전,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과 뒤이은 냉전, 그 이후까지 20세기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에릭 홉스봄의 책이 제법 많다(절판된 책이 더 많지만). 그 중에서 대표작을 고르라면, 『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혁명의 시대』이다. 이 3권의 저서는 역사학계에서도 인정하는 명저이다. 인류 역사상 매우 다사다난했던 19세기의 유럽사를 ‘자본’ ‘제국’ ‘혁명’의 3키워드로 정리했다. 20세기는《극단의 시대》로 정의했다.

에릭의 선조(아버지 쪽)는 1863년 민족주의적 봉기에 실패한 후 러시아 제국에 무자비하게 통합되어 독자적인 정체성과 제도를 상실한 ‘폴란드 입헌왕국(대규모 빈민 유대인 공동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릭의 아버지는 영국으로 이주(탈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한 선친들에 의해 런던 이스트엔드 유대인 지역의 중심부인 화이트채플에서 태어난다. 에릭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에릭의 부모는 상반된 성격이다. 아버지는 ‘이마에 주름이 있는 보통 체격의 근육질 남자’였고, 역시 유대인인 어머니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소설과 단편소설 작가였다(에릭은 어머니의 기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다혈질인 그의 아버지는 48세에 심장외상으로 사망한다. 에릭의 어머니가 결핵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당시 12세인 에릭은 가까운 친구의 영향으로 ‘공산당원’이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에릭이 14살 때 어머니는 36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에릭은 고아가 된다.

에릭 홉스봄은 어떻게 공산주의가 되었는가?

고아가 된 에릭은 성장할 때까지 친척의 도움을 받는다. 독일의 김나지움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다. 1931년(15세) 여름 베를린. 어린 에릭의 눈에도 자본주의는 완전 실패작으로 보였다. 새롭게 들어선 연립정부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무자비한 긴축정책을 시행한다. 이 정책을 통해 사회적 긴장감은 높아지고, 중간계급이 지지하던 자유주의 정당과 보수주의 정당은 무너진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우세하게 된다. 사회민주당에 실망한 좌파 다수는 파시즘을 저지할 최선의 기회를 공산당에서 찾게 된다. 베를린에 도착한 에릭은 어디서나 눈에 띄는 공산주의 대중운동을 목격한다. 경제 침체로 늘어나는 실직자들이 공산주의를 해방구로 삼은 듯하다. 공산주의가 세를 더함에 따라 나치당은 축소되는 시점에, 공산당은 조직력이 강하고 역동적이며 지극히 활동적이었다. 특히 젊은 층에게 매력적이었다. 나치당은 베를린 관구의 유능한 선전가이자 무자비한 정치 책략가인 요제프 괴벨스의 주도 아래 공산당 훼방과 섬멸작전에 들어간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공산당이 되겠다는 마음이, 이 무렵 공산당의 대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에릭은 훗날 “오스트리아에 머물렀다면 나는 아마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텐데, 그곳에서는 사회민주당이 가장 강력한 야당이었고 그들은 분명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이 여당인 베를린에서는 공산당이 가장 강력한 야당이었다”라고 말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한《공산당 선언》은 에릭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공산주의에 대한 에릭의 관심은 다른 무엇보다도 1930년대 초 베를린의 젊은이들이 직면한 냉혹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학창시절 에릭을 묘사한 문장들이 흥미롭다. ‘지독하게 못생겼지만 똑똑해’, ‘뭐든지 아는 (대학)신입생’,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징집)후 붙은 ‘영국군의 좌파 지식인’ 등. 에릭에게 공산주의는 자신에게 실제 정치라기보다 ‘이상적인 소망충족’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는 공산주의자가 된 이후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고 느낀다.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그는 전쟁 시 징집된 병영 훈련 중 ‘도통 읽지 못해’ 낙담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좋은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과 함께 살아간다. 그게 바로 문명이다. 책에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 에릭의 말이다. 에릭은 히틀러의 패배를 진심으로 원했다. 반나치 운동은 정치화된 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 무렵 전문역사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직 마음속에 없었다. 오히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방법을 바탕으로 ‘프롤레타리아 문학’,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문체로 이야기를 집필하는데 헌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열성 공산당원들과 어울리면서 품게 된 공산당에 대한 온갖 의심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미래는 여전히 프롤레타리아에 있다고 생각했다. 1946년 초 28세로 영국(군)동원이 해제되었을 무렵, 에릭은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열네 살 때부터 내키는 대로 글을 썼지만, 성년에 들어설 무렵 시와 소설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저술할 여지가 많은 역사가 나에게 적합했다.”

역사학자로서의 경력의 토대를 다지는 동안 에릭은 전쟁으로 인해 헤어짐과 트라우마를 겪은 친척들과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다. 전시에 유럽에 남았던 친척들이 나치와 그 동맹들의 반유대주의 박해와 집단 살해정책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에릭의 외가쪽 친척들 대부분은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했다. 그러나 에릭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나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당한 친척에 대해 쓰지 않았다. 이점에 대해 매우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을 토대로 사명감으로 무장한 역사학자 아닌가? 그런데 왜 침묵을 지켰는가? 에릭은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1988) “50년대 초 또는 40년대 말에 강제수용소에 관한 첫 자료가 나온 후로 나는 그것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마주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라고 밝혔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를 꺼린 사람은 에릭만이 아니었다. 전쟁 직후 수년 동안 이 주제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발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이 이 문제를 외면했다는 점은 아쉬운 마음으로 남는다.

에릭은 그의 이데올로기(공산주의자) 때문에 불이익이 많았다. ‘위험한 인물’로 찍히기도 했다. 대학교수 임용은 물론 논문이나 저서의 출간에도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 영국 보안정보국은 에릭이 자주 드나들던 영국공산당 본부에 도청장치까지 하고 에릭을 감시했고, 누구를 만나는가, 해외로 나갈 때는 무엇 때문에 나가는가를 예의주시하면서 제동을 걸었다(무려 50년 동안). 공산당 내부에서도 에릭은 아웃사이더로 분류되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그를 고분고분하지 않은 지식인으로 생각했다. 에릭의 특이점은 재즈에 깊은 관심을 갖고《재즈계The Jazz Scens》라는 책을 쓴 것이다. 1959년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출간된 이 책은 초기에 그리 관심을 갖지 못했지만, 상당한 세월이 지나고 1988년 그리스어 번역본을 시작으로 브라질에서만 10년간 출간된 번역본의 저작권료가 거의 1만 파운드가 되었다. 심지어 대학 강의를 쉴 때에도 이 책의 인세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결국《재즈계》는 “모든 재즈 애호가의 서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의 지은이 리처드 J. 에번스 역시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을 연구하는 영국 역사가이다. 에번스가 쓴 제3제국에 대한 일련의 역사서는 제3제국에 대한 표준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에번스는 “에릭의 이야기를 가능한 한 에릭 자신의 말로 전하려고 노력”했다. 한 사람의 평전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우선 기본적으로 평전의 주인공인 에릭 홉스봄이 남긴 책을 최대한 많이 읽는 것이 첫 작업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아울러 에반스는 3개 대륙 17개 문서고를 조사하여 찾아낸 홉스봄의 방대한 저술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 홉스봄의 성장, 내면의 변화, 인간적인 면모, 역사가이자 역사의 목격자로서의 홉스봄 이야기를 들려준다(에반스는 에릭과 친밀하게는 아니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알고 지냈다고 한다. 에릭을 너무 경외한 나머지 가까운 친구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책이 두꺼워진 까닭은 에릭 홉스봄의 장수(95세)와 연관된 듯하다. 이 책이 에릭 홉스봄의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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