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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책 이야기 [크로스 사이언스]

Power Reviewer 2019. 2. 6. 23:12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가? 1818년 메리 셸리가 익명으로 이 책을 출간했을 당시 사람들은 과학, 과학자를 향해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재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번개를 병에 담은 프랭클린에게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이 실험을 한 프랭클린에게 모던 프로메테우스라고 평했다. 그의 과학이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벽을 넘었다는 의미였다. 좋은 평가에 속한다. 그러나 종종 과학이라는 이름아래 행해진 일들이 오히려 인류의 안녕과 행복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염려와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책에 나오는 괴물에겐 이름이 없다. 괴물을 만들어놓고 놀래서 도망간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시 괴물이라는 지적도 잘못 된 것은 아니다.

 

 

의학,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공학 등의 자연과학에서 빠져나와 독립한 과학은 현시대에 들어서면서 과학기술학으로 이어진다. 과학기술학은 이 책의 지은이 홍성욱 교수의 전공분야이기도 하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사회가 과학기술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반대로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분석한다.

 

 

지은이는 이 책(강의)을 통해 대중문화 속 과학(또는 과학자)이 어떤 모습을 그려지고 있는지, 이 세상은 과학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는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나아가서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여 생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설명해준다. 지은이는 과학이라는 존재감을 밝혀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대중서적, 영화, 그림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이롭게 할 것인가.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선사하는 것이 진정한 유토피아인지, 아니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디스토피아인지 누구도 가늠하기 힘든 현실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에서 그려진 유토피아는 인간의 삶을 가장 인간답게 재조직하는 사회이다. 그의 유토피아에서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과학이나 기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과 단절된 일상이 과연 행복할까?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산다고 해서 과학의 산물에서 영영 벗어나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행복할까? 유토피아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 될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1627)에선 그곳()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을 위해 솔로몬의 집이라는 연구소가 등장한다. 이곳에선 과학의 힘이 우세하다. 한 번 먹으면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음식, 먹으면 육체가 단단해지고 힘이 솟아나는 식료품, 파괴력이 뛰어난 대포, 냉장고, 전화, 잠수함 등이 개발된다. 베이컨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 책에 담았다.

 

 

과학과 인문, 예술, 사실과 가치의 융합은 지금 우리에게 매우 절실한 일이다. 인류의 삶이 비참한데 나의 삶이 풍요로울 수 없고, 지구상의 다른 동식물들의 삶이 피폐한데 인류만이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없는 법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은 나를 둘러싼 조건들을 이해하고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인류에겐 많은 숙제가 남겨있다. 인공지능, 핵문제, 환경오염 등 전지구인들이 지혜를 모아 해결할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과학을 과학자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사회적 토양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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