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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나 떠나기 전 [비포 아이 고]

Power Reviewer 2015. 7. 22. 16:23

 

 

 

 

 

이야기 2015-140

 

비포 아이고콜린 오클리 / 아르테(북이십일)

 

 

당신의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다.”

                          _뒤랑 팔로

 

 

분노는 슬픔의 가면

 

때로 밑도 끝도 없는 슬픔과 불안이 스몰스몰 목까지 차올라오면 그것이 분노로 변신할 때가 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데이지는 어느 날 아침 냉장고 문을 열고 케일을 찾아보니 안 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녀에겐 약과 같은 것이다. 순간 부글부글 차오로는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깟 케일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게 뭐라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4년 전 유방암에 걸렸을 때 느꼈던 분노가 암이 재발되었다는 검사결과를 듣고 다시 끓어올랐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대체 서른 살도 되기 전에 두 번 씩이나 암에 걸릴 수 있나? 이제 겨우 27살이다. 번개에 두 번 맞는 꼴? 복권에 두 번 당첨되는 셈? 암과 로또를 같이 올려놓곤 스스로 기가 막혀 그저 웃고 만다.

 

데이지는 남편 잭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했다. 암이 재발되었다는 말을.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간다. 데이지는 일상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성격이다. 반면 잭은 집안일은 대충 대충이다. 아마 잭은 아내 데이지를 믿고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둘 다 치밀한 성격이면 오래 같이 가긴 힘들 수도 있다.

 

 

데이지는 일차 암치료 후 완치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지역사회 상담 전공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며칠 고민하던 데이지는 남편에게 재발 소식을 전한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그렇게 말을 흘린다.

 

 

재발이래.” 내가 말하는 순간, 그의 손에서 밀폐용기가 미끄러지고 우유와 시리얼이 폭포수처럼 그의 다리를 지나 바닥으로 쏟아진다.

 

 

데이지는 암이 재발했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기 원한다. 그러나 문득 생각을 떠올리며 어떻게 그 것(암 재발)을 잊을 수 있지? 하면서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암이라는 병은 부위와 시기에 따라 거의 증상을 못 느낀다. 얼마 전 내 가족 중 한사람이 암 진단을 받았다. 통증이나 불편함은 없었는데, 가끔 대변 후 피가 나오는 것을 통해 치질 정도로 생각했단다. 직장 신체검사에서 재검을 해보라는 요청을 받고 해본 결과 직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날 이후 그는 매우 흔들렸다. 정식 치료도 받기 전 마치 마지막 여행이라도 떠나듯 혼자 차를 몰고 동해안에가서 며칠 있다왔다. 혼자 술 마시고, 바닷가에 앉아서 펑펑 울다. 바다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하고 그렇게 흔들리다 와선 결국 방사선치료, 수술 후 많이 회복되고 있다. “왜 하필이면 내가?”를 노래처럼 읊고 다녔었다.

 

 

다시 데이지 이야기로 돌아간다. 암이라는 병이 때로 별반의 증상이 없기에 더 불안하다. 내가 잠시 잊고 있는 사이에, 잠시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암세포가 온 몸을 점령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암은 고통으로 힘든 면보다 생각으로 지치고 무릎을 꿇기 십상이다.

 

 

데이지가 생각하는 죽음은 이렇다.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이 두렵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이승 너머 펼쳐진 공간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패닉이 몰려오고 귀가 울려대는 바람에 일어나 앉아서 불을 켜고 숨쉬기조차 어렵게 짓누르는 어둠을 쫒아내야 한다.”

 

 

그런 상념에 몸이 축 처져 있던 그녀의 어느 날, ‘나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잭을 생각한다. 잭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주고 갈 일이 있을 텐데..집을 정리하는 법, 요리하는 법, 청소하는 법 등등을 가르쳐주고 적어줘야겠다. 그런데 과연 잭이 그대로 할까? 잭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진다. 암으로 죽기 전에 슬픔 때문에 먼저 죽을 것 같다. 잭은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따뜻한 사람, 돌봐주고, 사랑해주고, 더러운 양말을 치워줄,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일단은 착한 여인이다.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대부분 나 죽고 재혼하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밤마다 귀신이 되어 나타나서 혼내줄 거야 하지 않던가? 어쨌든 가슴은 저리지만, 남편의 새 아내를 찾아주겠다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남(남편은 남의 편이다)을 위한 것이기에 더욱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한다. 이 부분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다. “잭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찾아 줄 생각이다.”

 

 

잭의 새 아내를 찾습니다

 

낮에는 캠퍼스나 카페 또는 거리에서 실물의 여자들을 살펴보고 밤이면 SNS 나 저널들을 보면서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고 노력한다. 막상 데이지가 잭과 결혼하기 전엔 관심도 없었던 일들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들어주는 요소, 장기적이고 건전한 부부관계를 규정하는 특징.

 

잭에게 아내를 구해주려면 좀 더 많이 나다녀야 한다. 그물을 넓게 쳐야한다. 캠퍼스에서 낯선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몇 년 동안 다닌 요가 수업이나, 병원에서 시술을 받으며 누군가를 만날 수는 없다.” 그러던 와중에 잭 근처에 여인이 하나 등장한다. 마침 그 여인은 어떨까? 잭의 다음 아내로 어떨까? 생각하던 중, 잭과 그 여인(패멀라)과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데이지는 엄청 예민해진다.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이 땅에서의 삶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데이지가 죽은 다음에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데, 내 남편에게 말을 걸지 말아. 그를 웃게 하지 말아. 살아 돌아다니지 말아.” 소리 지르고 싶다. 그녀의 면전에서.

 

 

지독한 상실감과 함께 공황발작이 찾아온다. “잭에게 아내를 찾아주고, 내가 죽은 후 잭이 혼자가 아니기를, 곁에 누군가 있어주길 바라기는 했어도, 잭이 다른 여자를 사랑할 거라곤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줄은, 나를 사랑한 것처럼,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이 깨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잭과 그 여인(패멀라)과의 관계는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패멀라는 데이지를 위해 조용히, 조심스럽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이 땅에 무작정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단지 빨리 가고 나중에 가는 차이뿐이다. 작가는 슬프디 슬픈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데이지라는 여인을 통해 뜻밖에 빨리 먼 길을 떠나게 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잔잔하게 그려주고 있다. 흔들리는 마음과 살아 있는 동안 뭔가 남겨두고 가고 싶은 마음 등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안쓰럽다. 표현을 안 한다고 못한다고 없어지는 마음이 아니다. 따뜻한 슬픔에 유머러스함이 드레싱 된 향기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