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萬書庫

로마인이 쓴 로마 이야기 본문

카테고리 없음

로마인이 쓴 로마 이야기

Power Reviewer 2016. 6. 24. 16:20

 

 

쎄인트의 이야기 2016-112

 

사티리콘 】       페트로니우스 강미경 옮김 / 공존

 

 

로마, 로마인의 이야기는 외국인에 의해 쓰인 책들이 더 많다. 대표적인 예로 시오노 나나미와 콜린 매컬로를 들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등 여러 권의 책을 썼고, 가시나무새의 콜린 매컬로는 작가의 여생을 걸고 쓴 대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로마인이 쓴 로마 이야기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쿠오바디스의 주인공이고 실존 인물인 티투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Titus Petronius Niger)이다. 1세기 중엽 네로 시대에 쓴 작품이다. 원문은 20권 내외의 분량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텍스트는 그중 14~16권의 일부에 해당된다. 주요 등장인물은 떠돌이 검투사 엔콜피우스, 아스킬토스 등과 언변 좋은 수사학 선생 아가멤논, 노예 출신의 자유민 졸부 트리말키오, 남색을 밝히는 시인이자 사기꾼 에우몰푸스, 방탕한 부유층 여인 키르케, 부도덕한 유부녀 필로멜라 등 다양하다. 등장인물의 면모만 보아도 이 책을 통해 전개되는 사건들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색깔 있는 분위기가 그려진다.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인 검투사 엔콜피우스의 여정을 중심으로,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그는 어떤 때는 소설의 주역으로, 때로는 관찰자의 위치에 선다. 엔콜피우스의 동선(動線)은 갈리아 지방 남부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남부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티리콘2,000년 전 로마 제국, 네로 시대 로마인들의 삶을 매우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밝은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지은이는 이 시대 로마인들이 스스로 자유의지에 의해 행하는 일들이고 다들 그러고 사는 데 뭘하고 주장하지만, 후세대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갖가지 음란한 행각과 기상천외한 사건들,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 ()을 도구로 삼은 사이비 종교, 미신, 향정신성 최음제와 사치품의 유행 등에 대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포도주가 우리 불쌍한 인간보다 수명이 길지요. 그러니 실컷 마셔봅시다. 포도주는 삶에 활력을 주지요. 이건 진짜 오피미우스올시다. 참고로 어제 연회 손님들은 수준이 훨씬 높았는데도 이렇게까지 훌륭한 포도주를 대접하진 않았소이다.” 먹고 마시는 분위기가 그대로 그려진다. 그래도 종종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엔콜피우스 역시 중심을 못 잡고 살아가긴 마찬가지지만, 영양가 있는 말도 가끔 한다. “개간하지 않은 거친 땅에서는 눈이 오래 쌓여 있지만 쟁기질을 한 땅에서는 서리가 내려도 말하는 사이에 녹아 없어지는 법입니다. 사람의 가슴에 쌓인 울분도 마찬가지올습니다. 깨우치지 못한 마음은 분노에 숨이 막히지만 잘 갈이질한 마음은 금세 분노를 털어버리지요.”

 

 

적지 않은 두께의 책이다. 삽화가 없었으면 읽기에 퍽 지루했을 것이다. 책에 실린 삽화는 노먼 린지(Norman Lindsay)의 작품이다. 린지는 다양한 창작기법을 시도하면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유화와 드로잉, 판화, 수채화를 남겼다. 장편 소설도 열한 권이나 발표한 능력자였다. 편협하고 고루한 생각을 갖고 사는, 유머 감각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1969년 아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의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린지의 대표작은 오스트레일리아 어린이들의 꿈의 원천인 마법 푸딩이다. 린지는 아이들이 먹기싸우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그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마법 푸딩을 썼다고 밝혔다. 어쨌든 이 책에서도 린지의 재능과 유머 감각이 느껴지는 삽화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읽다가 지루하면, 그림들만 찾아서 후루룩 넘기는 재미를 맛 볼 수 있다.